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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오웬스

릭 오웬스를 처음 보면 새까만 천과 차가운 금속, 뼈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긴 흑발, 플랫폼 슈즈로 더 길어 보이는 팔다리, 검은 재킷 아래로 순간순간 드러나는 근육질의 몸.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은 대개 사람보다 아이콘으로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가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 이미지가 옷 뿐만 아니라 그가 다루는 모든 것. 가구, 집, 심지어 자신의 삶을 다루는 태도에 있다.
의상 조각가, 그리고 가구를 만드는 조형가
그의 옷은 다른 디자이너들의 옷과는 조금 다르다. 어깨의 각도를 들어 올리고, 실루엣을 미묘하게 꺾고, 천을 감아 몸의 윤곽을 확장시킨다.

옷을 걸쳤을 뿐인데 자신의 실루엣이 인간에서 조금 벗어나 어딘가 다른 종(種)이 된 느낌. 그 감각이야말로 릭 오웬스 의상의 핵심이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몸을 더 예뻐 보이게, 더 길어 보이게 다듬는다면 오웬스는 그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몸 자체의 형태를 재조립한다.

그의 가구도 마찬가지다. 대리석, 나무 합판, 알라바스터, 브론즈, 사슴뿔, 그리고 본인을 형상화한 왁스 피규어까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소재들이 침대, 의자, 테이블이라는 이름을 달고 서 있다. 앉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지만, 막상 마주하면 앉기보다는 바라보게 되는 물체들이다.







그는 세상에 편안한 가구는 이미 너무 많다고 말하며 본인의 가구들을 안티 코지(Anti-cozy)라고 부른다.
아늑함보다는 긴장, 휴식보다는 각성. 몸이 쉬는 대신, 정신이 깨어나도록 설계된 오브제들이다.
죽음이 함께 사는 집
그의 집을 보면 트라버틴으로 둘러쌓인 커다란 방, 수많은 운동기구들, 거대한 침대, 그리고 몇 개의 불편해 보이는 의자와 책상이 전부다.
의과대학 경매에서 산 해골, 돌아가신 아버지의 엽총,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석관 같은 죽음을 상징하는 오브제들 또한 놓여 있다.
그는 끝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이 더 또렷해 진다고 한다.

그는 불가피한 마지막 챕터를 감추지 않고 곁에 둔다.
그의 루틴은 아침 샤워, 흑백영화, 재즈, 테크노와 함께 하는 커피 타임, 출근, 낮잠, 작업, 근력운동, 그리고 저녁식사로 마무리 된다.
그 반복 속에서 그는 불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깎아낸다. 그의 집은 그저 사는 곳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조각해나가는 장소다.

‘예쁨’이 아닌 ‘형태’
릭 오웬스의 옷은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그가 집착하는 것은 ‘예쁨’이 아니라 ‘형태’다.
고전적인 드레스의 구조를 빌려오되 그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고대도, 현재도 아닌 어딘가 이 세상 바깥의 존재 같다.
그의 쇼에는 사실상 옷이라기보다 조각에 가까운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달의 조각가, 릭 오웬스
릭 오웬스는 종종 말한다. 자신의 옷은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류 미학에서 비켜난 사람들, 표준화되지 않은 몸, 기준 밖의 존재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옷이 아니라 보호막을 입혀준다. 그래서 그의 패션쇼에는 늘 역방향의 규칙이 존재한다.
디자이너들이 주로 옷에 몸을 맞추도록 모델을 선별한다면, 릭 오웬스는 반대로 모델의 실루엣과 개성을 먼저 보고 그 위에 옷을 새로 조각한다.
몸이 옷의 기준이 되고, 그 몸의 특이점이 오히려 작품의 중심이 된다.
그는 아름다움이란 남이 정한 척도에 스스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결함과 모서리를 당당히 드러낼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옷이 묻는 듯하다. 당신은 어떤 모습일 때 가장 나다운지.

사진 출처:
• 10magazine
• cfda
• edition
• hypebeast
• hollywoodreporter
• lumenarch
• rickowens
• liberties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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